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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만난 수학자, 페르마



지금 제 머리 속을 표현하자면, 
당장 누가 슬쩍 건들기만 해도
모든 균형들이 다 깨어져버릴 것 같은 상황입니다.

TV에서 주워들은 딴에는 어려운 개념들을 간신히 붙잡고서
까먹기 전에 글로 쥐어 짜내어서라도 
제 방식대로 풀어보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전공자들에게는 쉬운 개념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난해하기 짝이 없네요.

자, 시작해보겠습니다.

a² + b²  = c² 

직각삼각형의 가장 긴 한 변 길이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을 각각 제곱한 값의 합과 같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피타고라스』의 정리입니다.

하지만 위의 지수 2를 3으로 바꾸면 위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a³ + b³ ≠ c³
3뿐만 아니라 4나 5, 6, 7.. 그 어떤 자연수가 오더라도 위의 부등식은 성립하게 되지요.
즉, 위의 말을 간단히 식으로 표현하자면,

 aⁿ + bⁿ ≠ cⁿ (n > 2) 가 됩니다.

위는『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유명한 방정식입니다.

자,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흥미로워 질 겁니다.
위에서 지수 n은 『자연수』입니다.
여기서 잠깐, 자연수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1부터 1씩 더해지는 수라고 막연히 생각하기에는 그 근거가 약합니다.
1 다음에 2가 온다는 것은 우리가 2를 이미 자연수라고 알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죠.
이러한 반론이 없다면, 2는 단순히 기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2라는 기호가 왜 2라는 개념을 가지는지 설명할 수 없을테니까요.

자연수는 특징이 있습니다.
1을 제외한 모든 자연수는 소수이거나 혹은 소수의 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소수란 '1과 자신으로 밖에 나누어지지 않는 수'입니다.

우리가 자연수라고 하는 2, 3, 4, 5, 6, 7, 8, 9, 10 을 한번 살펴볼까요.
2와 3, 5, 7은 소수입니다. 1과 자신으로 밖에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4는 2와 2로, 6은 2와 3으로, 9는 3과 3으로, 10은 2와 5로 나눠집니다.
이것을 자연수라고 합니다.

자, 이 자연수들을 가지고 어떻게 위의 식을 증명해내야 할까요?
모든 자연수를 대입해야 할까요?
막막합니다.. 노가다도 아니고 말이죠..

이에 『오일러』라고 하는 수학자는 자연수가 아닌 『허수』라는 개념을 생각해내게 됩니다.
『허수, i』란 제곱을 해도 그 값이 음수가 나오게 되는 수를 말하는데,
오일러는 이 허수개념으로 n = 3을 증명해내고 이어 n = 4도 증명을 해내게 됩니다.
하지만 오일러의 활약은 거기까지 입니다.
n = 5에서 결국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을 하는 데에 실패하게 되죠.

그 뒤로 300여년 간 숱하게 많은 대수학자들이 도전을 했지만 
모두 실패하게 되죠. 이 중에는 그 유명한 『가우스』도 있습니다.

하지만 1993년 6월 어느 한 영국의 학회에서
『앤드류 와일즈』라는 사람이 갑툭튀(?) 해서 이 난제를 풀게 됩니다.

제가 수학 전공자가 아니라 그 자세한 증명 과정은 모르지만
대충 논리는 이렇습니다.

일단, 페르마의 정리가 틀렸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aⁿ + bⁿ = cⁿ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변형시키면 아래의 『타원 곡선 방정식』이 되죠.
y² = x³ + (Aⁿ - Bⁿ)x² - AⁿBⁿ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타원 방정식 문제로 바꿀 수 있네요.

'모든 타원 방정식은 모듈(대칭성을 가지는 구조)곡선으로 전환할 수 있다' 라는 것은
『타니야마』와 『시무라』의 추론입니다.
일본 사람인데, 좀 거시기하네요.

그리고 이 방정식 y² = x³ + (Aⁿ - Bⁿ)x² - AⁿBⁿ
페르마의 정리가 틀렸다고 가정하고 얻어진 방정식이니 존재하지 않는 방정식입니다.
(aⁿ + bⁿ = cⁿ은 모든 타원 방정식은 모듈 형태로 표현된다는 추론에 모순되기 때문에)
따라서『타니야마』와 『시무라』의 추론이 맞다면 모듈로 변환할 수 없습니다."

살짝 꼬이시죠?
쉽게 말해서, aⁿ + bⁿ = cⁿ을 만족하는 해 a, b, c에 대해서
타원곡선 방정식 y² = x³ + (Aⁿ - Bⁿ)x² - AⁿBⁿ은 모듈 구조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엔드류 와일즈는 그들의 추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냅니다.
그러므로 페르마의 정리가 틀렸다고 치고 얻은 방정식,
y² = x³ + (Aⁿ - Bⁿ)x² - AⁿBⁿ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aⁿ + bⁿ ≠ cⁿ은 옳습니다.

살펴보면 『앤드류 와일즈』의 접근법과 『오일러』의 접근법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앤드류는 귀납법이라고 하는 논리로써 접근을 했고, 
오일러는 n에 숫자를 하나하나 기입해서 풀어보는 방법을 택했지요.

물론 저 따위가 감히 대수학자, 오일러를 입에 담는 것은 가당치도 않는 일이고
350년이라는 수학적 지식과 성과가 쌓인 오늘 날의 앤드류라는 인물과
당시의 수학적 업적을 쌓기 시작한 오일러를 비교하는 것 또한 페어게임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350년이나 흐른 지금 앤드류와 오일러를 동일 선상에서 놓고 비교를 하자면
둘의 차이는 누가 낫다는 결론이 아니라 
최초 접근법에서부터 차이가 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누구는 한발짝 떨어져서 관조적 태도를 취했고, 누구는 완전 뛰어들어서 허우적댔다고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두 인물 모두 한 문제를 푸는 데에 있어서, 자신의 인생 모든 것을 걸었죠.
위대한 인물들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앤드류는 한가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다른 수학자들의 이론을 활용했고,
오일러는 한가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이전에는 없던 개념을 스스로 창조해냈죠.
만일 오일러가 성공을 했다면 제 말을 이해하는 여러분의 지금 판단도 달라질지 모릅니다.
그만큼 두 분의 성과에 따라 선입견을 가지고서 제 이야기를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의 결과를 가지고, 두 사례를 평가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옳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50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 속에서
숱한 대수학자들이 뜻을 품고 도전했고 '개인적'으로는 실패를 했었지만,
그들의 개인적 실패가 쌓여 지금의 누군가에 의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되었듯이
발전이나 진보라는 것 또한 이러한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350년간 난제로 남았다는 것을 뒤집어 본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흥미거리나 수수께끼 혹은 가십거리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너무 하찮아도 우스운 일이 되지만, 너무 어렵거나 원대해도 사람들은 우스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수세기 동안 풀리지 않는 난제 하나를 풀기위해 평생을 걸기로 결심했다는 것.
그리고 긴 세월동안 이렇게 도전적인 인물들이 끊임없이 나왔다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좌절이나 성공 혹은 희생이나 성취라고 하는 것은 
현상적인 모습일 뿐.
모두가 동일한 발전에 대한 공로자라는 점에서
그 본질은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앤드류 와일즈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해내고
분필을 내려놓으며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만 여기서 끝내는게 좋을 듯 합니다."

오일러도 가우스도 이 말을 들었다면, 이제는 편히 쉴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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