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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s

활용의 대가들-『1부 스티브 잡스』


"우리의 제품은 인문학과 기술의 중간 그 어디쯤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한마디에 우리나라 IT기업은 물론이고 사회 곳곳에서 인문학 배우기 열풍이 불고있다.
서점에 가면 인문학으로 정치도 하고 경영도 하고 처세도 할 수 있다는 책들을 한 눈에 수십 권은 찾아낼 수 있다.

학원가에서는 벌써부터 코흘리개들을 앉혀놓고 『스티브 잡스』 만들기에 혈안이다.

나는 지금 서점가의 장삿속이나 교육시장의 획일적인 풍조에 딴지를 걸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스티브 잡스의 제품에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고찰을 전하기 위함이다.

우선 인문학이 무엇인가 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장에 인문학은 사물을 다루는 자역과학과 대치되는 학문적 영역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다양한 방법의 접근이자 표현에 대한 학문이 인문학인 것이고
그 방법에는 미학적인 방법이나 인식론적, 존재론적, 형이상학적인 방법들이 있을 것이며
그 표현에 따라 철학이나 문학, 예술 등으로 나뉠 것이다.

즉 관념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와 표현의 활동이 곧 인문학이라 할 수 있는데,
보통의 기업에서 제품을 출시하고 이익을 창출하는 활동에 있어서 인문학이 끼어들 자리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한다.

시장분석과 수요예측이 이뤄지면 거기에 맞춰 원료나 부품구매의 수량을 정하고,
동시에 경쟁사의 동태를 한시도 쉬지 않고 살펴야 한다.
그 와중에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시장의 트렌드는 고객의 변덕을 부추기기만 하고, 
이제껏 밤잠 설쳐가며 세워 온 경영기획을 절대로 가만히 두게 하지 않는다.
이쯤되면 기획은 누더기가 되고, 이게 제대로 될지 안될지 조차 불안하기만 하다.

그리고 당장 내년의 먹거리를 확보할 투자금을 수백 수천억 쏟아 부어야 할 판인데,
인류 역사이래로 결론조차 나지않고 있는 장구하고도 고고한 관념에 대한 배부른 탐구가
도대체 기업활동에 있어 어떻게 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

이를 생각해보면 막연히 스티브 잡스가 모든 것을 뒤엎는『혁신가』라거나
혹은 번뜩이는 직관으로 모든 것을 융합하거나 창조해내는 『천재』라서 가능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참으로 개운치가 않다.

도대체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에 대해 조금 살펴보자.


"당신은 설탕물이나 팔 겁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꾸겠습니까." 

코카콜라의 CEO였던 존 스컬리를 영입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연봉이나 처우 등과 같은 보상에 대한 제시가 상식이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안정 속에서 적당히 명예나 유지하며 편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범부가 아니라면
오히려 몇 배의 거액이 제시되는 것보다 더더욱 뿌리칠 수 없는 매력적인 말이 아닐 수가 없다.
그것은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의 양자적 문제를 벗어난 스티브 잡스, 그의 지독하게 순수한 일면에 기인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의 이러한 성격은 훗날 모바일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모바일 제조업자 중에 아무도 음원시장의 견고한 城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만 그는 보란듯이
단말기 시장과 음원시장의 통합을 이루어낸다.
불법복제가 난무하던 당시의 음원시장의 주적은 MP3였지만, 잡스는 오히려 이 MP3로 음원시장의 통합을 기획한 것이다.
그가 단순히 협상에 능하고 합리적인 재원이었다면 과연 가능했던 일이었을까?

사물 본연의 기능 그 너머

책의 올바른 기능은 정보전달에 있다.
젓가락의 제 기능이란 음식물 섭취의 용이함을 돕는 데에 있다.
모두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책으로 뜨거운 냄비를 받치거나, 젓가락으로 화장실의 잠긴 문을 여는 것은
사물의 올바른 기능이 아니다.

이와 같은 논의로 물리적인 힘으로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 아닌
손 끝의 터치만으로 기능을 구동시키는 기술은 사실 아이팟 터치 이전부터 존재했던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UI로 활용한다는 것은 마치 책을 냄비의 받침대로 활용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하고 어찌보면 상큼한 상상이었다.

나는 이것을 『본연의 기능 너머의 기능』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

흔히 보통의 기업들은 특허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본연의 기능, 즉 1차적인 기능만을 양산해내는 경향이 많은데,
스티브 잡스는 이러한 『노가다』로부터 쿨하게 해방하여 2차적인 기능을 활용했던 것이다.
시각에 따라 부정적인 평가 또한 피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잡스의 이렇게 기가 막히는 묘수를 볼 때마다
묘한 흥분을 느끼고는 했다. 마치 적장을 스승으로 두고 있는 기분이였을까?

아무튼 나는 그가 사물을 바라볼 때에는 그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주변을 재구성하여 인식하는 버릇이 있었음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그러니까.

그리고 나는 이제 그의 말을 재해석 해본다.

"우리의 제품은 인문학과 기술의 중간 그 어디쯤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는 분명 인문학과 기술을 융합했다고 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 중간 어디쯤 걸쳐져 있다고 했다.

마치 책을 라면 받침대로 쓰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1부는 마쳐야 될 것 같습니다. 더 써내려 갔다가는 조금 더 독한 마음을 품게 될 것 같네요.
오히려 여기에서 끝을 맺는 것이 그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 오해받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술가와도 같았던 장사꾼, 『스티브 잡스』편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 2편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장사꾼 같은 예술가 『앤디 워홀』에 대해 다뤄 보겠습니다.

밤이 늦었는데, 모두 즐잠하시기를...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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