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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s

구글의 그릇


나는 한때 구글이 참 대단해 보였다. 아니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초 압도적인 단말시장 점유를 앞세워 모바일 OS시장의 1위를 고수했던 그 잘난 노키아의 심비안조차
애플의 i-OS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아니었던가.
그 '잘난' 1등조차 압도한 '대단한' 애플에 맞설 유일한 대항마가 바로
구글의 안드로이드였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기술의 접점에 있다며 철학과 교수 포스를 뿜던 애플에 대해
오히려 인문학적 용어인『개방성』을 외치며 수많은 아군을 끌어들였던
탁월한 기획력 앞에서 나는 살짝 감탄했다.

내가 높이 평가한 부분은 그 뿐 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단기수익이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수 없이 흔들리고는 한다.

더욱이 오너체제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외국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당장의 실적을 요구하는 주주들 앞에서 단기성과는 그들 경영인에게 
떨쳐버릴 수 없는 생명연장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구글은 그 세월좋다는 『개방』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는 당장의 수익보다는 더욱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일종의 선언(?) 비스무리한 것이었다.
당장의 쓸만한 모바일 OS가 아쉬운 제조사들로서는 여간 안심이 되는 선언이 아닐 수 없었다.
뒷통수는 나중에 맞더라도 당장 그럴 일은 절대 없다는 3년짜리 보증서와도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비록 애플이 모바일 OS시장을 선점하고는 있었다지만
이렇듯 구글의 장기적인 안목과 가늠키 힘든 큰 그릇(?)을 보며
나는 곧 다가올 모바일 시장의 빅뱅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요즘 여지없이 무너지는 중이다.

구글의 그릇이  턱없이 작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럼 구글이 모토롤라의 인수를 결정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이기에 나는 이렇게 꽁하게 있는 것일까?

표면적으로 그들은 '애플의 특허전 소송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앞세운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그들의 속내였을까?
일단 커피 한잔 마시며 미소를 지어보자.


대기만성이라는 아주 평범한 사자성어가 있다.

아시다시피 큰 그릇은 그 완성이 좀 더디다는 말이다.
이는 인생을 그리 오래 살아보지 못한 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우리네 인생만 살펴보더라도
세상을 품을 만한 인격과 비전이 어디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랴..
수많은 도전과 때로는 더럽고 치사한 견제를 감내하고,
심지어 가슴에 한으로 남을 못되기 짝이 없는 비난과
뼈 속까지 시리도록 매몰찬 외면조차
약으로 삼고 긴 세월을 인내해야만 비로소..
내면의 균형이 잡힘은 물론 그 누구도 품을 만한 담대한 인격이 허락되는 것이다.

사실 구글은 이런 면에서 많이 조급했다.
8살짜리 구글은 아직 제대로 된 시련조차 만나보지 못한 기업이 아니던가.

게다가 구글은 아직 잡스의 애플처럼 지금 당장 시장에 선빵을 날리는 대스타는 아닐 뿐더러
마치 출신과 직업이 다른 그리스 연합군을 후방에서 지휘하는 2선의 지휘관으로서
모바일 OS시장이 '오븐기에서 알맞게 익기'를 얌전히 기다릴 수 있어야 했다.
그 오븐기기들은 자기 것이 아니라 아테네와 스파르타 진영에서 잠시 협찬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의 속내가 생각보다 빨리 노출됨으로써 
안드로이드를 최적화로 구현해내는 삼성과 HTC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더하기 빼기가 가장 확실하다는 금융가에서 조차 외면받던 『노키아와 MS의 협약』에
이제는 그럴듯한 이유마저 제공하게 되었다.

길게 설명할 것 없다.
입 안에 든 사탕을 깨물어 먹는 아이와 녹여먹는 아이의 차이가 이러한 것이다.

그리고 살짝 샛길로 새자면..
요즘 구글의 기업문화를 따라하려는 곳이 많은데 이 또한 제고할 만한 일이다.
칼라풀한 쇼파 위에서 커피를 마시며 반바지 차림으로 복도를 뛰어다니는 그들의 기업문화는
다른 기업 근무자들의 부러움을 살지언정
제조라고 하는 일사불란한 사업을 이어가기에는
학교에서의 난상토론처럼 무결론적이고 과정중심적이며 지나치게 인권찬양적이다.

그럼 주변 제조사들의 근무환경에 대해 살펴볼까?

시장분석, 상품기획, 부품구매, 디자인, 회로설계, 기구개발, SMD조립, 불량검사, 마케팅, 영업 등
각기 첨예하고도 디테일한 업무들이 매일같이 동시다발적으로 때로는 전쟁처럼 치열하게 진행된다.
어찌나 치열했던지 학자들은 부서 간 이기주의에 대해 『사일로』라는 별칭까지 붙였을 정도다.

어디 그 뿐인가? 위에서 말한 내부적인 문제 이외에도 외부적으로는
수 많은 경쟁사와의 한치 양보도 없는 제품군 라인업 경쟁,
시간단위로 쏟아져 들어오는 고객들의 불만사례,
365일 눈에 불을 켜고 관리해도 사고가 터지는 협력업체와의 문제 등등
24시간 레이다를 세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장된 인권과 쾌적한 근무환경에만 맛들여 온 이쁘장한 구글이
상대적으로 터프한(?) 제조업을 잘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나는 회의적인 시각을 벗을 수 없다.

뭐.. 여차여차 해서 구글과 모토롤라가 환상적인 궁합을 이뤄냈다 하더라도
주가인상 따위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시장에서의 실적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나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을 벗어 던질 생각은 전혀 없다.
구글이 제 아무리 모토롤라 제품군에 OS 메리트를 얹어준다 하더라도 말이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든다면, 누가 와서
『이클레어 버전의 갤럭시S』와 『프로요 버전의 드로이드』를 고르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선택은 어디겠는가? 당연히 갤스아닌가?

왜냐? 이유는 초간단하다.
제품교체는 돈이 들지만, 
펌웨어 업글은 기다리면 될 뿐 전혀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두 회사간의 결합이 전혀 파괴력이 없다고 하는 것에 대한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이유다.
이렇듯 구글은 아직 디테일에 약하다.

오히려 안드로이드의 상징인 개방성이라는 철학에 크나 큰 흠이 생기게 됨으로써
향후 안드로이드 진영의 red sun 집중도가 약해질 뿐 아니라,
변방으로 내몰렸던 MS의 Window조차 새삼 재조명을 받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구글은 이제 벤처기업이 아닌 이상 이런 즉흥적인 선택은 삼가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큰 그릇은 좀 늦게 완성된다 했다.
신생기업 구글의 성급함이 장기적으로 지구정복의 야심에 큰 오명을 남길 것은 자명한 일이다.
머.. 자기들 알아서 하든지 ㅎㅎ


여담으로 MS에 대한 한마디.

MS와 노키아가 노린 것은 재기다. 이 재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키아의 스피디한 희생이 불가피하다.
어차피 버린 심비안이라지만, 아직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심비안을 통해 매일 노키아를 만나는 소비자가 꽤 된다는 이야기다.
윈도우가 이를 얼마나 빠른 시일내에 효과적으로 그리고 완벽하게 흡수하느냐는 향후 재기를 노린
두 회사의 협약이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의 갈림이 될 것이다.

가장 먼저 M00S번 버스를 탄 노키아는 자신의 선택이 결국 옳은 것이라며 무척 고무되어 있다.

하지만 축배를 들 시간은 없다.
MS가 기존의 심비안과 경쟁해야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면 아니 그럴 시간을 지금부터 
조금이라도 지체하게 된다면 몇 배의 손실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폰이 아이팟의 점유를 뺏아갔던 것 처럼,
MS는 빨리 심비안을 흡수해야만 한다.

노키아의 전광석화 같은 자발적인 희생과
그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MS의 절박하고도 진지한 태도가 우선이다.


물론 삼성은 해양전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애플이 인천상륙작전으로 모바일 시장의 허를 찔렀다면
삼성은 육지에서의 철저한 준비를 토대로 바다라는 원천을 장악해서 후속타를 막아야 한다.

그게 모바일 앱시장이든.. 그 대안인 모바일 웹시장이든..
TV와 모바일과의 결합에 의한 육지에서의 양동작전이든..
아니면 아예 클라우드든..

HTC보다 카드가 몇 장 더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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