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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두가지 축


한 인간이 살아 온 일대기를 인생이라 한다.
그러한 인생들의 조율과 대립의 기록을 역사라 한다.

이를 두고 김동길 교수가 말했다.
인생의 주제는 사랑이고, 역사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유라고.

맞는 말이다.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도
사랑을 갈구하기 위함이고,
수 많은 전쟁의 기록, 대립과 갈등의 기록 또한
조금 더 가지거나 더 큰 힘을 얻기 위함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표면적인 현상을 다룬 것이고,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가면 세상을 움직이는 축은
사랑이나 자유와 같은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인간이 가진 내면의 에너지는 욕구로써 분출된다.
채워도 채워도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구는 대부분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 『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 『상실에 대한 두려움』,
『훼손에 대한 두려움』 등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드러난다.
그래서 더 먹으려 하고, 더 친해지려 하고, 더 가지려 하고, 더 안전하고자 한다.

나 또한 김동길 교수처럼 간단히 이러한 욕구적 형태들을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해석하고 간단히 결론내릴 수도 있겠지만
까칠함을 조금 발휘해보면 역시나 꺼림직함을 피할 수는 없다.
저 두려움의 심리 그 속에는 절묘하게도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공통의 키워드,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인간은 가장 정직한 죽음이라 할 수 있는 생물학적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관계 단절 또한 사회적 사형 선고와도 같은 말이며,
상실, 훼손 또한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의 저편에는 항상 해결할 수 없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한 그 두려움 또한 절대 떨쳐낼 수 없기에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채울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불리는 『체제 System』라는 것이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어느정도 해결해준 부분은 있다.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급속히 퍼진 의료혜택의 대중화, 눈부신 소통 기술의 발전, 유래없는 사회 치안의 안정 등은
인간이 겪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죽음에 대한 경험에서 점차 멀어지도록 했다.

따라서 수천 수만년 간이나 『불안의 지배』를 받던 인류는
20세기 들어 불안을 어느정도 떨쳐내고 더 가지기 위한 욕망에 눈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불안의 심리』와 『욕망의 심리』는 그 궤를 같이 하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불안』이 『죽음』이라는 하나의 키워드에 집중되는 것이라면
『욕망』은 다방향으로 분출되는 무한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체제가 들어서고 인간의 욕망에 대한 끝없는 갈구는 더욱 합법적으로 장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기존의 상품보다는 현재의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기업은 끝없이 욕망을 자극하는 경쟁으로 치닫고,
그러한 무한 소비 유도가 오히려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대량소비 대량생산만이 사회를 유지하는
하나의 미덕이라는 학자들의 헛소리까지 버젓이 활자로 유통되고 있다.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솔직한 모습은 바로 불안에 떠는 것이다.
바로 죽음에 대한 불안 말이다.
사람은 그러한 두려움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인류의 태생적 조건이다.

젖소에게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투여하여 피가 날때 까지 우유를 쥐어짜는 것이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지금 사회의 모습이라면
최근 일고있는 『3km운동*』은
죽음을 두려워할 줄 알던 과거 인류의 모습이다.

*(3km 운동. 내 주변 3km 이내의 농작물로 끼니를 해결하자는 운동.
유통의 발달은 생산지의 집중을 불러왔고,

따라서 생산지와 소비지의 구분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와 농촌의 구분은 에너지의 생태적 순환의 흐름을 막을 뿐 아니라,

대량생산의 시대가 들어선 이후 더욱 무리한 방법으로 농촌의 토양을 쥐어짜내고 
심지어 제3세계의 아이들의 노동력조차 쥐어짜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식량 생산비용보다 운송의 비용이 더욱 많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자신의 끼니는 
자신의 주변에서 해결하자는 하나의 움직임이 생겨나게 되었다. 10km 운동 또한 같은 맥락이다.)


아직 어떤 책에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지만 나는 단연코 주장해본다.

"세상을 움직이는 두가지의 축은 『욕망의 심리』와 『불안의 심리』이며
20세기가 욕망을 끝없이 자극했던 시대였다면,
이제 21세기 더 나아가 22세기는 극에 치달았던 미친 사회를 정화하는 시대,
즉 불안이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라고.

선남선녀 커플보다는
한 쪽이 사활을 다툰다거나 절절한 사연을 가진 커플들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깊고 오랜 사랑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가장 순수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론 오해는 말라. 
나는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