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iews

유럽은 미개한가?



Europe.

 

이 말만 들어도 소리지를 분들 많을 것이다.

물론 좋아서 말이다.

 

문화의 도시, 예술의 도시.

낭만과 역사가 있는 도시하면 대부분

런던이이나 파리, 로마, 브뤼셀, 프라하 등을 떠올리기도 한다.

 

뭐, 맞는 말이기도 하다.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

그 중에서 특히 아시아 사람들,

또 그 중에서도

동북아권인 중국이나 한국, 일본 사람들은 반드시 알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개인차이겠지만,

무조건적으로 유럽을 동경하는 것은

어쩌면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일단 본론으로 넘어가면..

 

마르코폴로의『동방견문록』을 보고

각 유럽의 왕실이 받은 충격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도지히 믿기 힘들었던지 중국 청나라에 사절단을 보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시켰다고 한다.

도대체 뭔 내용이었길래?

 

황금으로 치장된 궁궐과

100접시도 넘는 휘황찬란한 산해진미들,

먼지조차 굴러 떨어진다는 매끈한 비단복..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음식문화가 큰 관심을 끌었다고 하는데

당시 제 아무리 유럽의 왕실이라고 해도 그 음식은 그리 화려한 편은 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불에 익힌 고기나 빵 위주의 식사였고,

먹는 방법도 맨손으로 집어 먹거나 개인용 나이프가 있어서

초대받은 귀족들은 각자 칼을 꺼내어 썰어 먹었다고 한다.

 

물 그릇은 주인이 하나만 준비하면 되었는데,

모두가 이 그릇 하나로 돌려 마셨다고 전해진다.

 

즉 그들에게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아시아인들의 식탁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을 것이다.

 

원래의 재료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조리법이 수백가지는 넘었을 것이고

신기에 가까운 손 기술로 젓가락을 다루면서

음식 하나 흘리지 않고 집어먹는 광경은 그야말로 입을 떡 벌어지게 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고 돌아온 그들은 식탁 문화에 대해 많은 변화를 시도하게 되는데,

지금은 세계적인 요리로 평가되는 프랑스의 요리 또한 그 틀이 잡히게 된 것은 바로

이 무렵 이 후인 17세기 말엽이다.

 

하지만 그들을 가장 현혹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茶문화였다.

 


유럽의 물은 그리 깨끗한 편이 아니어서, 그대로 식수로 이용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낮은 도수의 술을 식수 대신 이용하고는 했는데

이것이 여태껏 그들이 누려 온 초라한 음료 문화의 전부였다.

 

하지만 어두운 방에서 의복을 차려입고

마치 의식과도 같은 절차를 거친 후 차를 정성껏 마시는 모습을 본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 거의 절망에 가까울 만큼의 문화적 빈곤감을 느꼈을 것은 자명하다.

  

또 당시 녹차가 괴혈병 치료에 탁월하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귀족들 사이에서는 녹차를 마시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지게 되는데,

당시 유럽의 녹차 음용풍습은 꽤나 재미있다.

 

안주인이 귀한 녹차를 포트에 내어 놓으면 일제히 그들은 찻잔을 내려놓고 찻잔 받침대에 녹차를 따라 마신다.

이때 소리를 후루룩 크게 내는 것이 주인에 대한 성의의 표시이고 답례였다고 한다.

 

이러한 동북아사아의 앞선 문명은 유럽인들의 열등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동양을 정신문화에 서구를 물질문명에 비유하고는 하는데

그것은 아마 이러한 부분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녹차문화로 대표되는 동양의 다도풍습은 정신을 상징하겠고,

홍차문화로 대표되는 서구의 침략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물질에 대한 욕심을 상징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찌된 일인지..

 

오히려 유럽의 사람들이 더욱 더 자유로운 정신과 영혼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한 평이라도 더 소유하고자 거실을 확장하는 우리네 소유욕과

발코니를 따로 내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그들의 자유로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침략한 나라의 문화재는 그렇게 쉽게 파괴하고 수탈해갔으면서도

막상 자기네 박물관에서는 카메라 플라쉬 하나 터뜨리지 못하게 하는 그 가증스러운 모습을 이제는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사실 나는 유럽에 가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차라리 다 내려놓고 달릴 수 있는 오지가 훨씬 마음이 편하다.

 

굼뜬 귀족 점원에게 말을 거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될 수 없고,

수탈해 간 문화재를 보기좋게 내걸고 이것이 유럽의 품격이니 문화니 떠들어대는 그들을 보면 일단 분노가 인다.

그래서 카메라 사용이 익숙치 못했던 일본인 노부부들의 몸에 손을 대고 (이는 유럽인들의 기준에서는 폭행에 해당)

조롱하던 바티칸의 직원에게 대판 따져 물었던 적이 있다.

 

(다양성에 대한 수용과 관용을 의미하는 유럽의 『똘레랑스』는 사실 이런 가증스런 면이 있다.

 자기와 대등하다고 여겨지는 대상에게만 베풀어지는 관용은 개방의 자세가 아닌 오히려 폐쇄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언제 그랬냐는 듯

최근 깨어있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의 허구를 세상에 알리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 행동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추잡한 정치적 계산도 없었다.

 

나는 참 고민이 깊어진다.

 

우리는 아직 그 죄인에게 분노가 남아 있는데,

그 죄인은 이미 다 잊고 새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세월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듯..

세상 또한 나의 생각이나 상황은 전혀 고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직도 유럽이라고 하면 구김살 없이 감격에 겨워 소리지를 수 있을까?

 

나에게 있어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곳.. 바로 유럽이다.